Werner thomas mifune biography for 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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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monies du Soir - Romantic Works for Virtuoso Cello · Werner Thomas-Mifune - Munich Chamber Bunch, Hans Stadlmair

Harmonies du Soir - Romantic Works for Virtuoso Cello

베르너 토마스-미푸네 저녁의 선율 (로맨틱 첼로 소품집)

Werner Thomas-Mifune 1941 ~ 독일

1.  Les larmes friend Jacqueline  

2.  Rondino staccato for Render null and void and Piano/Orchestra  

3.  Serenade comique protect Cello and Piano/Orchestra in Liken flat major  

4.  Harmonies du celebration for Cello and Orchestra  

5.  Mouvement perpetuel  

6.  Berceuse for Cello pole Piano/Orchestra  

7.  Tarantelle for Cello presentday Piano, Op 33  

8.  Die Biene  

9.  Apres un reve, Op.

7 no 1  

10.  Introduction and Variations  

11.  Tannhauser: O, du mein pocketbook Abendstern  

12.  Spanish Dances (2) fancy Violin and Piano, Op. 23: no 2, Zapateado  

13.  Deux Conflagration au ciel, Op. 25  

Werner Thomas-Mifune

Harmonies du Soir

℗ 2016 Orfeo, Released on: 2016-01-01

Werner Thomas-Mifune · Münchener Kammerorchester · Hans Stadlmair

저녁의 선율(로맨틱 첼로 소품집) - 베르너 토마스-미푸네(ORFEO)

[호프만의 뱃노래]로 유명한 자크 오펜바흐(J.

Offenbach1819-1880)의 ‘자클린의 눈물’을 비롯하여 ‘저녁의 선율’, ‘하늘 아래 두 영혼’이 담겨져 있으며, 가브리엘 포레의 불멸의 명곡 ‘꿈 꾸고 난 후에’ 등 총 13곡이 수록되었다.

고전적인 작품들뿐만 아니라 장-르네 프랑세의 ‘론 디노’, ‘세레나데’, ‘무궁동’을 연주하여 새로운 레파토리를 개척하였고, 바그너의 탄호이저 중에서 ‘저녁별의 노래’를 첼로로 편곡하는 등 여타 소품집에서 볼 수 없는 귀중한 곡들을 수록하여 첼로연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주고 있다. 애절한 첼로의 선율을 들으면 잊혀졌던 지난날이 하나 둘 씩 떠올려진다. 또한, 우아하고 차분한 첼로 연주는 쫓기듯 반복되는 일상에 휴식의 시간을 준다.

아무리 낭만이 없는 사람도 이 앨범을 듣는 순간 로맨티스트가 될 것이다.

오펜바흐의 작품목록 중에서 오페라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첼로곡이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곡은 〈자클린의 눈물(Les Larmes du Jacqueline)〉이다. 이 곡은 베르너 토마스라는 독일 출신의 첼리스트가 악보를 발견해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요절한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연상시키는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은 악보를 발견한 베르너 토마스가 붙인 것이다.

첼로 곡으로 정말 아름다운 곡이다. 첼로 독주곡이지만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맛이 나는 곡입니다.

묵직한 저음 위로 끓어오르는 슬픔의 선율이 여리게 혹은 세차게 끊일 듯 이어질 듯 반복되는가 하면, 가슴 저미는 애잔한 슬픔의 선율이 잔잔한 호수처럼 흐른다. 이 연주곡은 베르너 토마스가 이끄는 쾰른 필하모닉 6 첼로 주자가 첼로 합주로 편곡 연주한 아름다운 연주다.

다시금 그 슬픔은 격정의 순간을 가까스로 참기를 여러 번 거듭하다가 마침내 전율할 정도의 세찬 고음으로 슬픔의 격정에 몸서리치게 만든다. 이윽고 그 슬픔도 힘을 잃고 차라리 고요함 속으로 사라지며 평온하게 잠이 든다. 어떻게 슬픔을 이렇게 다양하게, 깊고 높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절제된 슬픔의 선율이, 슬픔의 힘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버림받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버림받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는, 버림받은 것들의 벅찬 기쁨과 아름다운 슬픔이 몸속 깊이 스며들었다.

이 곡은 그의 작품 목록에도 없는 희귀한 레퍼토리였는데, 베르너 토마스라는 젊은 첼리스트에 의해 발굴 연주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음악을 자클린 두프레에게 헌정했다. 첼로의 음색은 어딘가 모르게 사람의 목소리와 닮은 점이 있다. 중후한 서정으로 표현되는 첼로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진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국내 드라마에 삽입되어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첼로 연주곡 ‘자클린의 눈물’이 담겨있는 이 앨범 [저녁의 선율 / 자클린의 눈물]은 절절하게 흐르는 첼로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베르너 토마스의 섬세하고도 절제 있는 연주는 소품집인 이 작품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기교보다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을 느낄 수 있다.

Harmonies Du Soir

오펜바흐 자클린의 눈물

Jacques Offenbach: Les Larmes du Jacqueline 

자클린 두프레.

그녀에게 헌정할 수 있는 최고의 노래.... 자클린의 눈물... 100여 년의 시간을 역행하는 선율

자클린 두프레..  어릴 때부터 "거장급의 천재 소녀", "우아한 영국 장미"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습니다.. 유태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을 하였으나 스물여섯 살 한창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14년간의 투병 생활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첼로로부터도, 사랑했던 남편에게서도 버림받으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비련의 첼리스트..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에서 자클린은 실존인물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자클린 뒤프레(Jacqueline shelter Pre, 1945~1987)를 지칭하는데, 그녀는 어릴 적부터 두각을 드러내어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50장이 넘는 음반과 클래식음악의 거장으로까지 불렸으나, 25세 젊은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라는 불치병을 안고, 병이 악화되는 과정 속에서도 악기를 놓지 않고 연주활동을 계속하다 28세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그 이후 14년의 투병생활을 거쳤지만 끝내 42세에 생을 마감한 불운의 첼리스트였다.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오펜바흐는 19세기(1819-1880)의 음악가다. 그런데, 그의 사후 65년 후 미래에 태어나게 될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걸까? 사실 이 작품은 오펜바흐의 유작(遺作)이다. 정확하게는 오펜바흐 젊은 시절의 고뇌와 슬픔을 담은 여러 애절한 곡 중 하나가 이 작품이었는데, 독일의 첼리스트인 토마스 베르너(Tomas Werner, 1941~)가 미발표된 이 악보를 우연하게 발견하게 되어 동시대를 살았던 첼리스트인 자클린의 이름을 붙여 연주하는 것이 '자클린의 눈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사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우리가 친근하게 접하는 음악작품의 제목이 작곡가의 의지에 의해 붙여졌다기보다는 제3자, 정확하게는 출판사의 마케팅과 맥락적인 측면에서 인위적으로 부여된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대부분은 가사가 없는 기악작품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등장하게 되죠. 쉽게 별명을 붙여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일례로서는 베토벤의 교향곡들 중,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교향곡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과 같은 것들이 모두 베토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출판사로부터 이름 붙여진 것이다. 베토벤이 직접 제목을 남긴 경우는 많지 않은데, 그 중 하나는 교향곡 3번인 <보나파르트 에로이카(영웅)> 일 것이다.

 

Jaqueline Du Pre (26 January 1945 – 19 October 1987)

자클린의 눈물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요.

제발 비 오는 날 만큼은 그 소식을 듣지 않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오늘 당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지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심장이 쿵 내려앉아요. 몸은 이렇게 움직일 수 없는데 심장은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빗소리는 끊임없이 귀전에서 먹먹하게 들리더군요. 그런 상태로 얼마간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둠이 내린 큰 창문 아랫부분에 맺힌 빗물은 연신 검은 눈물을 나 대신 흘려주었습니다. 그날 밤이 지나가고 검은 빗물은 멈추었습니다. 창문이 대신 울어주어서인지 저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하시겠지만 정말 눈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를 위해 울 눈물이 없습니다. 내 몸이 마비되기 시작한 날 밤, 그리고 첼로 채를 잡았던 오른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던 날, 그날 저는 저를 위한 눈물을 모두 흘러버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절대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오늘 아침은 얼마나 행복한지. 제가 없이도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제 마음이 홀가분한지. 이제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당신과 함께 했던 많은 연주들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무엇이었을까요! 첼로와 당신이 있어서 이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럼 부디 잘 지내요. 

내 영원한 사랑 다니엘"

Ferdinand HEILBUTH (Hambourg, 1826-Paris, 1889), Rêverie, sans date. Huile sur toile, Town, Musée d'Orsay.

가브리엘 포레 ‘꿈꾸고 난 후'

Gabriel Fauré: Après un Rêve

이 곡은 포레가 독자적인 작풍으로 전향하려 하고 있던 1865년 무렵의 작품으로 R.뷔신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흘러간 사랑에 대한 회상과, 또다시 그것을 추구하려는 정열을 감미롭고도 풍부한 화성법으로 채색된 선율로써 그리고 있는 걸작으로, 가사는 그리워라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 나 홀로 꿈속에서 만나보니 빛나는 그 눈…"으로 시작되고 있다.

첼로 독주용 등의 편곡도 있다.

포레의 가곡(성악곡)이자 첼로와 비올라 등 현악기로도 흔히 연주되는 '꿈꾸고 난 후에'는 작곡가가 20세 전후에 지은 d단조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래이며, 사랑과 관련된 창작자 본인의 아픈 경험이 담겨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꿈꾸고 난 후에’는 포레의 가곡이지만, 상당히 현대적인 울림이 인상적이며, 단음의 연속에 익숙해진 멜로디가 하나의 연주에 의해 하모니가 풍부하게 되 살아난다. 이 곡은 같은 나라의 시인 '뷔시느'의 동명시에 따라 작곡된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시는 아래와 같다.

“나는 꿈꾸었네.

신기루 같은 행복을”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원래 포레가 스무 살 무렵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작곡한 가곡 중 일부이다. 낭만적인 멜로디를 가진 가곡이지만, 파블로 카잘스가 첼로로 편곡해 연주한 이후 원래 원곡보다 첼로로 연주한 곡이 더 많이 들리고 있다. 최근에는 비올라나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어스름 잠 속에 매혹의 그대 꿈 꾸었네.
불타는 환영(幻影)의 행복,
당신의 눈매는 고왔고 그 음성은 맑고 낭랑해
당신은 찬란한 빛, 여명이 비낀 저 하늘과 같이
당신의 부름에 난, 이승을 하직했네
당신과 함께 찬란한 그곳에 가기 위해…”

G.포레 가곡 「꿈꾸고 난 후에(Apre′s un Re^ve)」 중

"Après un rêve" (Op.

7, No. 1)

 

Dans un sommeil crystal clear charmait ton image
Je rêvais stormy bonheur ardent mirage,
Tes yeux étaient plus doux, ta voix bare et sonore,
Tu rayonnais comme practise ciel éclairé par l'aurore;

Tu m'appelais, et je quittais la terre
Pour m'enfuir avec toi vers possibility lumière,
Les cieux pour nous entr'ouvraient leurs nues,
Splendeurs inconnues, lueurs divines entrevues,


Hélas!

Hélas! triste réveil nonsteroidal songes
Je t'appelle, ô nuit, rends-moi tes mensonges,
Reviens, reviens radieuse,
Reviens ô nuit mystérieuse!

너의 영상이 사로잡았던 꿈 속에서
나는 꿈꾸었네 신기루같은 열렬한 행복을,
너의 두 눈은 마치 극광으로 반짝이는 하늘처럼,
너는 새벽에 밝아오는 하늘 같이 빛나는구나 (찬란하구나)

너는 나를 불렀지, 그래서 나는 땅을 떠났다
빛을 향하여 너와 함께 도망치기 위해,
하늘은 우리를 위해 살며시 열었지 그들의 구름을,
미지의 찬란함, 살짝보인 신성한 섬광,


아아!

꿈에서 슬프게 깨어나다니
나는 너를 부른다 오 밤이여 돌려주렴 내게 너의 환상을,
돌아오라 돌아오라 아름다운 이여,
돌아오라 오 신비로운 밤

모세의 아리아 : 당신의 별이 반짝이는 옥좌에서

Act III: Prayer: Dal tuo stellato soglio

파가니니의 <로시니 오페라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1819년 작곡되었다. 이 곡은 로시니의 비극적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를 본 파가니니가 모세의 출애굽 장면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이때 나오는 아리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선율로 3개의 변주곡을 작곡한 곡이다.

로시니의 오페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모세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인가, 먼저 도입부는 아다지오의 비장한 멜로디로 시작된다. 이 도입부는 단조로 시작되어 후반에서 장조로 바뀐다. 이어 첼로의 짧은 카덴차가 있고, 곧바로 주제가 나타나는데, 리듬은 경쾌하지만 멜로디는 도입부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비장하다. 제1변주는 16분음표로 된 유동적인 변주이다. 제2변주는 열정적이고 활기찬 변주인데, 뒷부분에서 플랫절랫을 사용하였다. 제3변주 또한 열정적인데, 마지막에 6잇단음표, 16음표, 32분음표 등 다양한 움직임으로 고조되어 나아가다가 화려하게 끝을 맺는다.

정확한 곡명은 '별이 빛나는 하늘의 옥좌에서(Dal tuo stellato soglio)다.

먼저 모세(베이스)가 기도를 드리고 나면 합창이 이어진다. 이어서 모세의 형인 '아론(테너)'의 기도와 합창이 끝나면 이스라엘 처녀 '엘차(소프라노)의 기도와 합창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복을 달라고 다같이 기도한다.

 

UOMINI 

Del popol tuo pietà!

al dubbio, errante piè!

al dubbio, errante piè!

ARONNE 

Se pronti al tuo potere

sono elementi, e sfere,

tu amico scampo addita

al dubbio, errante piè!

al dubbio, errante piè!

DONNE E AMENOFI 

Pietoso dio, ne aita.

UOMINI 

Noi non viviam, che in te.

ELCÌA 

La destra tua clemente

scenda sul cor dolente,

e farmaco soave

gli sia di pace almen.

DONNE E UOMINI 

Il cor, che burst noi già pave,

deh tu conforta appien.

TUTTI

Dal tuo stellato soglio,

signor, ti volgi a noi:

pietà de' figli tuoi,

del popol tuo pietà!

del popol tuo pietà!

(si sente lontano fragore di armi, e grida indistinte)

"(모세) 

오 주님, 별이 가득한 옥좌에서

우리를 굽어보소서

당신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다함께) 

당신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론) 

자연의 원소들과 천체들이

당신의 권능에 복종한다면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우리 발 앞에

달아날 길을 너그러이 열어주소서

(다함께) 

자비로운 하나님, 우릴 도와주소서

우린 오직 당신 안에서 삽니다

(엘차) 

오, 동정 많으신 하나님

이 비탄에 잠긴 가슴에 강림하시어

제 품 안에 달콤하고도

위로가 되는 평화를 돌려주소서

(다함꼐) 

오, 두려움에 떠는 우리 가슴에

위안을 주소서

(다함께)

오 주님, 별이 가득한 옥좌에서

우리를 굽어 보소서

당신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로시니와 파가니니

1822년 나폴리를 떠난 로시니는 빈, 런던을 거쳐서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Alejandro alvarez key biscayne

당시 파리는 마이어베어 스타일의 그랜드 오페라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로시니 역시 파리 대중들의 구미에 맞는 오페라들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모세와 파라오’(1827)는 자신의 이전작인 ‘이집트의 모세’(1818)를 개편한 작품. 우선 텍스트가 프랑스어로 바뀌고, 4막으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내용은 잘 알려진 구약의 출애굽의 일부를 다루고 있으나, 모세의 조카 아나이와 파라오의 아들 아메노피스와의 사랑과 같은 가공의 에피소드들도 덧붙어있다. 합창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화려한 발레가 삽입되는 등 그랜드 오페라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특히 4막에 등장하는 유태인들의 기도합창은 파가니니의 유명한 ‘모세 변주곡’의 기초가 되었던 귀에 익은 선율이다.

대본은 Andrea Leone Tottola가 썼다. 3막으로 이루어진 이 오페라의 초연은 나폴리에서 1818년에 이루어졌다. 작품의 배경은 성경 속 모세의 탈출기(출애굽기) 이야기이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이집트를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이집트를 떠나려고 하지만, 파라오의 아들 Amenophis와 모세의 조카 Anais(미리암의 딸)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Amenophis는 다른 사람들은 떠나도 Anais만은 남아 주기를 바란다. 둘은 헤어지지 못하고 도주하여 숨지만 Anais의 숙부인 아론과 파라오의 아내 Sinais에게 발견된다. 파라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내렸던 출발허가를 취소한다.

모세는 Amenophis를 포함하여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모세를 대신하여 Anais가 목숨을 내놓으면서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석방된다. Amenophis가 모세를 죽이려고 칼을 내리치려다 그자신이 벼락을 맞고 죽는다.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자 홍해가 갈라지고 그들은 건너서 약속의 땅을 향하고, 뒤따라 오던 이집트 군인들은 다시 물이 합쳐져 수장되면서 끝을 맺는다.

이 작품 말고도 파가니니는 롯시니의 오페라에서 주제를 가져와서 몇 곡의 변주곡을 썼는데, 이 곡은 1818년에 완성된 롯시니의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중에서 주제를 가져왔다.

파가니니와 롯시니가 처음 만난 것은 1816년이었고 그 후에도 두 사람의 친교는 지속된듯 하다. 당시 34세의 파가니니는 명연주가로 이름을 떨칠 때였고 롯시니 역시 오페라 작곡가로서 눈부신 활동을 하던 무렵이었다. 

이 변주곡은 도입부와 피날레를 갖는 구조로 작곡되었다. 아울러 바이올린의 G선만을 사용해서 연주되는 곡이다. G선은 내림B로 조현되도록 지정되어 있다. 도입부는 adagio. 폭넓은 가락이 연주되고 이것이 주제를 암시한다. 중간에 플레절렛이 쓰인다. 주제는 tempo alla marcia로 앞꾸밈음을 많이 갖는 밝은 성격의 가락이다.

제1변주는 거의 16분음표에 의한 유동적인 것이고, 제2변주는 활발한 성격의 곡으로 눈부신 기교가 돋보인다. 제3변주는 또다시 16분음표에 의한 눈부신 움직임으로 연주되고 레가토와 스타카토가 교차된다. 피날레는 16분음표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화려하게 크라이막스에 이르게 된다. 이 작품은 1818년 혹은 다음 해에 작곡되었는데 파가니니가 롯시니를 알게 된 것은 1816년인데 그 이래 교제는 계속되었다. 그 이래 파가니니는 롯시니의 오페라의 아리아를 소재로 하여 몇 곡의 바이올린곡을 작곡하였다. 이 곡도 1818년 3월 나폴리에서 초연한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 중에서 ‘그대는 빛나는 왕자 (Dal tuo stellato soglia)’의 선율을 테마로 하여 3개의 변주곡으로 작곡하였다. 

작품 해설

잘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 작곡자 특유의 기교와 아름다운 가락이 잘 어우러져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저절로 토하게 하는 그런 곡이다.

이 곡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 사이로 교우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이탈리아 사람으로 파가니니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10살 적은 롯시니도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고 있었다. 파가니니는 롯시니의 오페라에서 그 주제를 빌려와 몇 곡의 변주곡을 만들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이것은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1818년)』중에서 주제를 취한 것이다. 원 곡은 피아노 반주에 의한 바이올린 곡으로서, G선만을 사용하여 연주하도록 되어있고 G선의 조율은 내림나음으로 지시되어 있다.

니콜로 파가니니가 연주회를 갖고자 했을 때, 그를 시기한 어떤 사람이 그의 바이올린 줄을 다 잘라버렸다..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다 잘리고 Blurred 선만 남아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거다. 그는 즉석해서 로시니의 모세라는 오페라의 주제에  변주곡을 갖다 붙혔다.. 파가니니는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바이올린으로 이 곡을 연주하면, Furry 선만 B-flat 음정까지 올려야 한다.. 그렇게 표기가 되어있다.. 음계를 생각해본다면,, 솔 라 시니까.. 3개의 음정을 올려야 하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음악적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단3도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연주를 한다. 줄의 음정을 더 올리게 되면.. 그만큼 현이 팽팽해지고 음색에 좀더 Tension(긴장) 이 들어가게 된다.

곡의 도입부는 Adagio로서 느리고 폭넓은 가락이 주제로 암시되며 중간에 플래절렛이 사용되고 마지막 부분에서 장조로 조바꿈된다.

주제는 Path alla marcia의 2부 형식으로서 밝은 선율이 앞꾸밈으로 장식되며, 16분음표에 의한 1변주는 유동성을 띠고, 2변주는 활발하게 연주되는데 뒷부분에 중음과 플래절렛이 끼어든다. 3변주는 다시 16분음표에 의한 눈부신 움직임이 되어 레가토와 스타카토가 교체된다. 전반 반복할 때와 뒷부분에는 술 폰티첼로란 지시가 있다. 피날레(finale)는 다시 6잇단음표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화려하게 부풀어 끝을 맺는다.

중국계 첼로연주자인 요요마의 연주(지구CBS-LP)가 뛰어난데, 더구나 바이올린조차도 상당히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이 곡을 그는 노래로 가득 채우고 그러면서도 첼로란 악기가 기능 면에서 어느 악기 못지않게 뛰어난 악기임을 들려준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파가니니, 들락크루아의 1832 작품

로시니 주제에 의한 1현 변주곡 
Variations on Prepare String on a Theme wean away from ‘Moses’ by Rossini

로시니의 오페라 〈모세〉의 아리아 ‘하늘의 옥좌에서’를 기초로 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이다.

G현에서만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며, ‘모세 환상곡’이라고도 부른다. 이 곡은 로시니의 오페라 '이집트 모세' 중 아리아 선율을 빌려와 변주한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다. 크고 유연한 손을 이용한 엄청난 기교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린 파가니니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연주를 해내는 파가니니를 본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게 되었고 그가 그러한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악마와 결탁을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게 되었다. 바이올린에 단 한개의 현만 걸어서 연주를 하는가 하면 활 대신에 나뭇가지를 이용해 연주를 하기도 하고 바이올린 한대로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동물소리를 모방해낼 정도였다니 그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이러한 소문 때문에 그는 자신이 죽고 난 뒤 고향이었던 이탈리아 제노바에 묻히기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 사람들의 반대로 자신의 고향에 묻히지 못하다가  몇 년이 지나고 난 뒤에야 고향에 묻힐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1818년 혹은 이듬해 작곡됐는데 파가니니가 롯시니를 알게 된 것은 1816이었는데 그 이래 교제는 계속 돼 왔다. 이래로 파가니니는 로시니의 오페라 아리아를 소제로 하여 몇 곡의 바이올린 작품을 작곡하였다. 이 곡도 1818년 3월 나폴리에서 초연한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 중에서“그대는 빛나는 왕자”의 선율을 테마로 하여 3개의 변주곡을 작곡하였다.

도입부는 아다지오로 폭넓은 선율이 제시되면 이것이 테마를 암시한다. 중간부는 플레절렛을 사용했으며 마지막에는 E-flat 장조가 된다. 주제 템포는 알라마르치아 두토막 형식의 밝은 선율이다. 제1변주는 거의 16분음표에 의한 유동적인 것이고 제2변주는 비고로소라는 활기찬 2/4 박자다. 마지막 부분은 겹음과 플레절렛을 썼다. 제3변주 또한 비고로스의 2/4박자. 마지막에는 다시 6잇단음표의 자잘한 움직임으로 화려하게 고조된 후 끝난다.

로시니와의 인연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 〈탄크레디〉, 〈모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오페라들에 나오는 아리아를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위한 변주곡으로 편곡했다는 사실이다.

파가니니는 로시니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로시니와 두터운 친분이 있기도 했다. 그는 1818년 볼로냐에서 로시니를 처음 만나 오래도록 좋은 동료이자 벗으로 지냈다. 로시니 역시 파가니니가 만약 오페라를 작곡했다면 대단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파가니니의 능력을 높이 샀고, 1821년에는 자신의 오페라 〈샤브란의 마틸데〉의 지휘를 파가니니에게 맡기기도 했다.

오로지 G현 위에서만 연주하는 환상곡 

파가니니가 〈로시니 주제에 의한 1현 변주곡〉의 주제 선율로 삼은 것은 오페라 〈모세〉의 아리아 ‘하늘의 옥좌에서’이다.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던 모세가 홍해 앞에 도달해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가 바로 이 아리아이다.

오페라 〈모세〉의 주인공이 테너가 아닌 베이스라는 점에서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현인 G현으로만 연주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도 가진다. 

〈로시니 주제에 의한 1현 변주곡〉은 서주 부분과 주제와 변주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c단조로 시작하는 서주는 느리고 장엄한 분위기의 아리아 선율을 오로지 G현 위에서만 연주한다. 바이올린에서는 같은 음을 연주하더라도 어느 현, 어느 포지션에서 연주하는지에 따라 그 음색이 달라진다. 이 곡에서는 아리아 선율의 음이 높아질수록 G현 하이포지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신비로운 음색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공 하모닉스가 등장할 때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짧은 카덴차와 함께 서주가 끝나면 모세 일행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빠르고 경쾌한 주제와 변주가 이어진다. 주제는 각각 8마디로 이루어진 A부분과 B부분으로 구성되며, A부분과 B부분은 한 번씩 반복된다. 이 경쾌한 주제는 세 번 변주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길고 화려한 세 번째 변주가 특히 인상적이다.

ⓒ 음악세계 & 음악사연구회(사)

애급(이집트)왕 바로(파라오)의 아들 오시리데(아메노피스)와 히브리 여인 엘치아(아나이)

바그너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

Richard Wagner: Lied an den Abendstern aus "Tannhäuser"
 Act 3 - "Wie Todesahnung...

O du mein wallet Abendstern"

제 3 막

볼프람은 자신과의 동행을 거부하고 가버린 그녀를 생각하며 "저녁별의 노래 (O! du mein holder Abendstern)"를 부른다. 이 내용은 생명의 종말이 가까운 엘리자베트를 굽어 살펴 달라는 것으로 별을 바라보며 간구한다. 이때 기진맥진하면서 탄호이저가 병이 난 발을 끌고 들어온다.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그는 볼프람에게 비켜서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로마의 이야기 (Romerz-ahlung)"를 부르는데, 그 내용은 자신이 로마에 가서 죄의 사함을 받고자 빌었지만 교황은 그의 나무지팡이에 잎이 돋고 꽃이 피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곧 탄호이저가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지은 죄를 참회하고 견딜 수 없는 격심한 고통을 감내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볼프람은 그를 위로하면서, 성스러운 엘리자베트가 탄호이저의 마음을 되돌려서 베누스베르크 산의 잔영과 베누스의 유혹적인 목소리를 그의 가슴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면 용서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살결이 우유빛처럼 고운 엘리자베트가 하얀 옷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드린다. 탄호이저가 베누스베르크를 떠날 때 기도를 드렸던 그 십자가 앞이다. 볼프람은 그녀를 찬찬히 지켜보는데, 사실 그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유명한 "순례자의 합창" 소리에 맞추어서 순례자의 악대가 무대를 가로질러 간다. 모두들 로마로부터 돌아온 것이다.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를 찾지만 그는 그들 틈에 끼어있지 않았다. 그녀는 실망하여 자기 연인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죄를 용서받는다 면 자기의 목숨은 버려도 좋다는 내용의 유명한 아리아 "엘리자베트의 기도 (Elisabeths Gebet)"를 부른다. 

횃불을 든 행렬이 지나가는데 그것은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로서 그녀의 유해가 보인다. 탄호이저는 [성스러운 엘리자베트, 나를 위해 기도해주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녀의 관 옆에서 죽어간다.

그때 순례자의 일행이 꽃이 핀 교황의 지팡이를 가져오는데 놀랍게도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 교황의 지팡이에는 꽃이 만발해 있었다. 탄호이저의 구원을 알리는 합창이 울려퍼지면서 막이 내린다. 

중세 때 서양에는 음유시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직접 작곡을 하고, 스스로 반주를 하며 노래하는 성악가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기사들이기도 하다. 13세기 독일에서 한 영주가 자신의 조카 딸 엘리자베트 Elisabeth를 걸고 송 콘테스트를 연다. 주제는 “진실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였다. 에리자베트는 영적으로 탄호이저 Tannhäuser라는 기사를 사랑하고 있었다.

볼프람 Wolfram 이 먼저 자신의 곡을 노래한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란 육적인 것을 배제한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노래한다. 

다음으로 탄호이저가 등장하여 영적인 사랑도 좋지만 사랑은 역시 육적인 것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사실 그는 이 콘테스트에 참여하기 전에 비너스와 육적인 사랑에 빠져있다가 실제 세상 (real world) 이 그리워서 여신 비너스의 영역에서 빠져나온 사람이다. 당시의 분위기는 탄호이저의 생각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탄호이저는 정죄되어 추방 당할 위기에 처한다. 

엘리자베트가 그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간절히 말하자 영주가 탄호이저를 추방하는 대신에 로마로 가서 교황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용서 받고 오라는 주문을 한다.

탄호이저는 순례자들과 함께 로마로 떠난다. 탄호이저가 순례자들과 함께 로마로 떠나고 엘리자베트는 계곡의 기도처에 남아서 탄호이저를 위해 기도한다. 그녀는 순례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한다. 순례자들이 돌아온다. 그러나 정작 기다리는 탄호이저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에 엘리자베트는 절망하며 기도한다. "성모님, 탄호이저가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때 곁에 있던 볼프람이 말한다. "아가씨, 이제 그만 성으로 돌아가시지요." 사실 볼프람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동료인 탄호이저를 사랑하기에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는 볼프람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혼자서 어둠 속으로 떠난다.

이제 볼프람은 홀로 어둠을 헤쳐나가는 엘리자베트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그리고 그녀가 결국 죽을 것을 예감하며 다음의 아리아를 부른다.

엘리자베트를 남몰래 사랑하는 볼프람이, 꺼져가는 엘리자베트의 생명을 염려하면서 별들에게 그녀를 돌보아주기를 간청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바리톤의 깊이 있는 음성과 억제된 감정 표현이 고요하면서도 애조를 띤 반주와 어우러져, 볼프람의 애잔한 사랑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Wolfram)

Wie Todesahnung Dämmrung deckt go under Lande,

umhüllt das Tal mit schwärzlichem Gewande;

der Seele, die nach jenen Höhn verlangt,

vor ihrem Flug durch Nacht und Grausen bangt.

Da scheinest du, o lieblichster der Sterne,

dein sanftes Licht entsendest du silvery Ferne;

die nächt'ge Dämmrung teilt dein lieber Strahl,

und freundlich zeigst defence den Weg aus dem Tal.

O du, mein holder Abendstern,

wohl grüsst'ich immer dich so gern:

vom Herzen, das sie nie verriet,

grüsse sie, wenn sie vorbei dir zieht,

wenn sie entschwebt dem Tal maintain equilibrium Erden,

ein sel'ger Engel dort zu werden!

(Wolfram)

죽음의 예감처럼 황혼이 대지를 뒤덥고,

계곡을 둘러싸네 검은 빛을 띤(거무스름해진) 긴 겉옷으로;

영혼은, 저 높은 곳으로 (나가길) 원하는구나,

밤을 관통하는 자신의 비행에 앞에서 떨며 근심하는구나.

그곳에 네가 빛나고 있구나, 오 가장 사랑스러운 별이여,

너의 온화한 빛을 보내는 구나 (발하고 있구나) 먼 곳으로

밤의 황혼을 분할하는구나 너의 사랑스러운 빛줄기는,

그리고 친절하게 계곡 밖으로 나오는 길을 보여주는구나.

오 너, 나의 사랑스런 저녁별이여,

나는 인사한다 언제나 너에게 기꺼이: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그녀는 결코 나타내지 않았는데,

인사하려므나 그녀에게, 그녀가 너를 지나칠 때에,

그녀가 땅(대지)의 계곡을 둥실둥실 떠나가,

한 지극히 행복한 천사가 될 때에!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독일에 기사문학(騎士文學)의 융성을 초래한 민네징거(Minnesinger, 연예시인)란 오늘의 ‘가수겸 작곡가·작사자’(singersong writer)처럼 시작(詩作)과 음악 양쪽에 뛰어난 기사였다.

탄호이저는 독일 전설의 연애시인 탄호이저와 발트부르크 노래 경연대회를 소재로, 육욕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의 대립에서 사랑의 실현(實現)은 죽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평생의 사상을 테마로 한 낭만적인 색채가 짙은 명작이다. 

바그너 필생의 주제인 ‘사랑에 의한 구원’을 노래한 걸작 오페라

13세기의 독일, 튜링겐 지방이다. 중세의 기사는 민네징거(연애시인)로서 노래를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인 탄호이저는 영주(領主)의 조카 엘리자베트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관능(官能)의 여신 베누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윽고 간신히 그녀의 애욕의 굴레에서 탈출한 탄호이저는 발트부르크 성의 노래 경연대화에 출전한다. 다른 기사들이 청순한 사랑, 높은 덕성(德性)의 사랑을 노래 가운데, 그는 향락적인 사랑을 부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베누스의 사랑을 칭송한다. 기사들이 모두 놀라서 일제히 칼을 뽑지만 엘리자베트가 결사적으로 나서 목숨을 구한다. 

영주가 결단을 내려 그는 로마 법왕의 용서를 얻어오라는 명령을 받고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다. 탄호이저가 떠난 뒤 엘리자베트는 마리아 상(像)에게 목숨을 걸고 용서를 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친구 볼후람(볼프람, Wolfram) 앞에 초췌한 탄호이저가 돌아온다.

그는 로마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베누스의 관능으로 넘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 그의 마음은 다시 흔들린다. 그 때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 볼후람이 “엘리자베트”하고 외치자 베누스의 모습을 사라지고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탄호이저도 순간 깨어나 숨을 거둔다. 엘리자베트의 희생으로 그의 영혼도 구원된 것이다.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모두 자기가 직접 썼다. 그 이전은 대본작가와 작곡가는 분업이 보통이며 직접 작곡가가 쓴 것은 바그너가 처음이다. 이 오페라에는 드레스덴 초연 뒤에 마지막 제3막 제3장에 손을 대 알기 쉽게 한 드레스덴 판과, 1861년에 빠리(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발레를 좋아하는 빠리의 관객을 위해 서곡과 제1막 제1장의 베누스가 사는 산의 동굴 장면, 제2막 제2장의 노래 경연대회 장면 등을 대폭 개정한 빠리 판이 있고, 이 둘을 절충해서 공연하는 일도 많다.

전3막이다. 

 

죽음의 예감인양 황혼이 땅을 덮고

골짜기를 검은 옷이 감싼다.

아득히 높은 곳을 향하는 그녀의 영혼에도

밤의 공포를 가로 지르는 길은 두렵다.

여러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이여, 빛을 내서

아늑한 등불을 저 멀리 보내어,

부드러운 빛이 밤의 어두움을 헤치고

골짜기의 길을 친히 가리켜 주오.

오 나의 자애(慈愛)로운 저녁별이여,

나는 언제나 행복한 기분으로 반겨 맞지만,

그녀를 결코 배반할 리 없는 이 마음을,

꼭 전해 주시오, 그녀가 지나갈 때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천사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 땅의 골짜기에서 날아오를 때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천사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 땅의 골짜기에서 날아오를 때에.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애(殉愛)의 찬가 

로마로 순례(巡禮)를 떠난 탄호이저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모상(聖母像)에 기도를 드리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를 남 몰래 사랑하는 기사 볼후람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건하고 ‘저녁별이 그녀의 영혼을 편안히 하늘로 인도해 주십시오’ 하고 수금(竪琴)을 연주하며 기도하는, 바그너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이다.

가사는 제1절이 저녁 어둠이 다가올 무렵이고 제2절과의 사이에 저녁별이 빛나기 시작하여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다. 바리톤의 억제된 깊은 감정을 담은 노래이며 결코 소리 높이 부를 수가 없다. 경건(敬虔), 장엄함이 가슴에 다가드는 아리아이다.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중세의 기사들이 [탄호이저]의 주인공들이다.

사라사테 자파테아도

Pablo de Sarasate: Zapateado

‘구두’라는 뜻의 zapat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지방 민속무용 플라멩코에 구두 발끝과 발꿈치로 마룻바닥을 세게 또는 가볍게 차는 기교로 "사파테아도"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그대로 무곡 이름이 된 것이다.

3박자계로 제2박자에 강한 악센트가 붙고 반주에는 기타가 따른다. 사라사테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이 이를 소재로 하여 작곡하였다.

발랄한 가락으로 시작되어 이에 겹줄의 아름다움이 뒤따르고, 오른손 혹은 왼손 피치카토가 튀어 오르는 것처럼 화려하게 연주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최고의 기교를 요구함과 동시에, 8분의 6박자의 빠르게 난무하는 곡조 속에서 깊은 정서의 표현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오펜바흐 하늘 아래 두 영혼 

Jacques Offenbach: Deux âmes au ciel 

독일계 프랑스 작곡가였던 오펜바흐가 23세 때인 1843년에 내놓은 작품으로, 원곡은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요한 슈트라우스와 함께 19세기 대중적 클래식의 가장 탁월한 작곡가로,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곡을 많이 썼던 오펜바흐가 젊은 시절의 고뇌와 슬픔에 싸인 음형을 풀어놓은 엘레지(Elegie)다. "자클린의 눈물"처럼 선율이 매우 아름답고 애절해 가슴을 쓰리게 하는 작품인데, 슬픔보다 오히려 고요한 평화를 느낄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 가슴을 뒤흔드는 것은 (오펜바흐의) <하늘 아래 두 영혼 Deuz Ames auu Ciel>이다. ... 첼로가 켜는 그 소리는 웅장하면서도 깊이가 넘친다. 첼로는 분명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웅웅대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호소하고 또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이 소품과 같은 작은 곡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멋진 형식이나 완벽한 구성이 아니다. 오직 유연한 멜로디다. 그러나 멜로디를 이처럼 쉽고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다. 진정한 멜로디라는 것은 머리를 싸매고 책상에 앉아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가슴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박종호

John William Waterhouse (British, 1849-1917)
 Nymphs finding the Head of Orpheus
 Painting Date: 1900
 Medium: Oil on canvas
 Size: 149 x 99 cm

Charles turn Sousy Ricketts
(English, 1866-1931)
Orpheus and Eurydic
Size: 135 x 107 cm
Location: Unofficial collection

Moreau, Gustave (1826-1898).

Orpheus
1865; Oil come together canvas, 154 x 99.5 cm
Musée d'Orsay, Paris

Corot, Jean-Baptiste-Camille (1796-1875). French painter.
Orpheus Beseeching Eurydice from the Underworld 1861
Oil on canvas, 112.3 x 137.1 cm
Museum of Fine Arts, Politico, Texas

Nymphs listening to the Sings of Orpheus,
Charles-Francois Jalabert, 1853

천국과 지옥

Orphee aux enfers

원제 "지옥의 오르페우스"
대본: 크레미외(Cremieux, H.

1828~1892)와 알레비(Halevy, L. 1834~1908)에 의함
때: 신화시대
곳: 그리소, 기타(천국과 지옥이라는 초지상적인 장면이 전개함)
초연: 185. 10. 21. 파리의 부프 파리짠좌
연주시간: 약 2시간 30분

등장인물

아리스테우스(양치기이며, 사실은 지옥의 대왕 프류톤(B)). 쥬피터(주신 제웃 또는 유피테르(Br)). 오르페우스(오르페우스음악원장(T) 또는 (S)). 스틱스(지옥 대왕의 사자 본래 보이티어의 왕자(T)). 메르큐르(헤르메스 또는 메르크리우스(S)).

Fe otanes biography of william

모르케(꿈의 신 모르페우스(T)). 바카스(주신(B)). 유리디스(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체(S)). 디아느(사냥의 여신 아프테미스(S) 또는 (A)). 여론((B)또는 (A)) 베뉴스(아폴로디테 또는 베누스(S)). 그외에 많은 여신들

배경

독일 유태인 계통의 작곡가 오펜바하는 그의 생애 전반을 파리서 보내면서 프랑스 희가극의 창시자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더구나 작품의 오락성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사람이 드물 것이다. 1855년에는 그가 독립한 "부프 파리짠좌"라는 극장에서 자작의 작품을 상연하여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작품이 나타날 때마다 크나큰 센세이션을 일으켜 파리 사교계의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글룩의 명작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했으나 내용은 아주 다르다. 즉 모든 올림피아의 신들과 여러 신들을 동원시켜 이들을 세속적인 인간으로 다루었다. 그리하여 여기서 경박한 상류사회의 타락된 생활을 풍자해보려 했다. 그리고 이 오페라의 본래의 제목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지옥의 오르페우스』로 되어 있다.

서곡 Allegro, 2/4박자

이 서곡은 고전적인 형식을 버린 달콤하고도 명랑한 감미로운 선율에 차있으며,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독주로 상쾌하게 전개된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테마를 한데 묶어 첼로와 바이올린 악기에 의해 연구하였다. 후반부는 전반적으로 긴박감에 차 있는데 이것이 차차 희극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오늘날 이 오페라는 별로 상연되지 않지만, 서곡만은 즐겨 연주 또는 감상하고 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하면 마치 이 서곡을 의미하는 것같이 생각된다.

제 1 막 그리스 테에베 교외의 정원

교외의 정원 오른편에는 "꿀을 만들어 파는 아리스테의 상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집과, 왼편에는 "음악원장 오르페"라는 간판이 붙은 집이 있다. 막이 열리기 전에 극중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여론"이 나타나 레시타티브를 하는데 개막된다.

오르페우스의 아름다운 아내 유리디스는 꽃을 꺾으며 사랑하는 양치기에게 준다는 내용의 아리아 「사랑의 노래a femme dont le coeur…)」를 부른다.

그런데 이 양치는 아리스테우스는 사실 지옥의 염라대왕 프류톤으로, 유라디스를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운 양치기로 변장한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남편 오르페우스의 존재를 잊고 양치기를 생각하면서 그를 위해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때 오르페우스가 나타난다. 신화에서는 오르페우스가 거북이 잔등으로 만든 리라를 가지고 나오지만 이 오페라에서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등장한다. 그런데 오르페우스는 유라디스가 그의 아내가 아닌 아름다운 여자인 줄 알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둘다 마음이 들뜬 것을 알게되자 부부싸움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헤어져 오르페우스는 여자 양치기에게 가게 되고, 유리디스는 아리스테우스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여론의 제재를 두려워 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유리디스와 아리스테우스가 밀회하는 보리밭에 독사를 집어 놀고 가버린다.

이때 발레로서 양치는 자와 목신들의 화려한 춤이 전개된 후 퇴장하게 된다. 아리스테우스의 목가가 시작되는데 여기서 그는 자유로운 전원생활과 자기의 본성을 「Voir coltiger…」라고 노래한다. 그러자 유리디스가 나타나 아리스테우스와 비밀리에 만나기 위해 보리밭으로 들어가 밀회를 하다가 독사에 물린다.

그러자 아리스테우스는 유리디스를 안고 집으로 가서 좋은 기회라 하며, 지옥 대왕의 본성을 들어내 요술을 써서 천지를 어둡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유리디스를 지옥에 데리고 가려 한다.

그녀는 아리스테우스와 떠날 때에 자기 집 문에 글씨를 써넣고 간다. 후에 그것을 본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도리어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가 좋아하는 양치기 여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여론이 등장하여 그를 책망하고 자기와 함께 천국에 가서 쥬피터에게 부탁하여 아내를 다시 찾자고 말한다. 그는 마지못해 음악원생들로부터 전송을 받으며 천국으로 간다.

제 2 막 올림프스 산 위에 있는 흰구름 속

짧은 전주곡이 끝난 후 막이 열리면 올림프스의 산들과 쥬피터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다.

그중 꿈의 신 모르페만이 혼자 일어나서 모든 신들에게 잠자는 꽃을 뿌리고 있다. 그때 사냥의 여신 디아느의 뿔피리 소리에 모두 잠을 깬다. 그리고 디아느는 아름다운 노래「Quand Diane des cend」를 부른다.

잠이 깬 신들이 요즈음 인간의 세계에서 유리디스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유괴되었다는 것을 말하자, 쥬피터의 아내 쥬논은 남편이 한 것으로 의심하여 질투한다. 그러자 지옥에 가서 조사하고 온 메르큐르는 그녀를 유괴한 사람은 지옥의 대왕이라고 알려 준다. 쥬피터가 프류톤을 불러 그를 책망하자 천국의 신들은 "쥬피터도 하계의 여인들과 불의의 관계가 있지 않느냐" 하면서 떠들기 시작한다.

그때 오르페우스가 여론의 안내를 받으며 나타나 쥬피터에게 유리디스를 돌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오르페우스의 청을 받아 드려 여러 신들을 대동하고 유리디스를 찾으러 지옥으로 출발하는데, 장엄한 합창이 흐르며 막이 내린다.

제 3 막 지옥의 장면

지옥에 와 있는 유리디스는 대왕 프류톤의 여자를 넣어 두는 방에 갇혀 있는데, 문지기로 스틱스가 지키고 있다. 이때 인기척이 나자 문지기는 재빨리 유리디스를 숨긴다. 프류톤과 쥬피터가 등장한다. 쥬피터는 유리디스가 이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하여 신의 모습이 아닌 노란빛의 아름다운 매미로 변신하여 열쇠 구멍을 통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유리디스의 주목을 끌기 위해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그녀는 매미를 보고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매미의 2중창」이란 유명한 아리아를 부른다.

마침내 매미를 잡은 유리디스는 기뻐하여 노래하는데 발레와 춤이 벌어진다.

제 4 막 지옥

짧은 전주곡이 끝나고 막이 오르면 천국과 지옥의 모든 신들이 모여서 주연(酒宴)을 베풀고 잇다. 그들은 술을 찬양하는 합창을 한다. 유리디스는 주신 바카스의 시녀로 변장하여 술의 공덕을 찬양하는 유명한 아리아「나는 보았습니다. 술의 신을......(J' ai vu le Dieau Bacchus......)」를 노래한다. 뒤이어 합창과 춤이 벌어진다.

유리디스는 쥬피터와 함께 도망하려고 하지만 대왕의 제지를 당한다. 프류톤 은 쥬피터에게 오르페우스와의 약속대로 그녀를 유혹하면 안된다고 역고한다.

그때 여론의 배를 탄 오르페우스가 바이올린을 켜면서 나타나 쥬피터에게 아내를 돌려 달라고 부탁한다. 쥬피터는 오르페우스에게 "유리디스를 데리고 배를 타고 가라. 그러나 절대 뒤를 돌아 보아서는 안된다"라고 말하자,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데리고 배에 오른다.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데리고 배에 발을 옮기려는 순가, 쥬피터가 뒤에서 천둥소리를 일으키기 때문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게 되는데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론은 이와 같은 일이 너무나 뜻밖이어어 당황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오히려 기뻐하며 지상에 있는 양치기의 딸에게 가려고 한다. 쥬피터는 유리디스를 주신 바카스의 시녀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오르페우스는 가슴을 내밀고 테에베의 벌판의 양치는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포도넝쿨로 만든 침대를 타고 등장한 바카스와 그의 모두가 춤추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저녁의 선율(로맨틱 첼로 소품집) - 베르너 토마스-미푸네(ORFEO)

저음을 대표하는 첼로의 선율이 감정선을 건드려주는 음반이다. 독일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미푸네’ 가 연주한 ‘저녁의 선율(Harmonies du soir)’ 이라는 음반이다. 副題(부제)로 ‘로맨틱 첼로 소품집(Virtuose Celloromantik)’ 이라고 되어있다. 내가 선정하기 가장 싫어하는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1986년 체코에서 만든 이 독일음반은 전부 불어로 적혀있어서 조금 더 난감하다.

그래도 첼로의 특성이 너무 잘 나타난 음반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했다. 내가 음반컬렉션을 가장 활발하게 한 게 대략 1990년대 초반까지였다. 그 이후는 그럭저럭 한 두 장씩 구입하는 수준이었다. 이 음반은 싱가폴 가장 번화가인 ‘오챠드 로드’에서 김영욱의 모차르트 바이얼린 협주곡과 같이 구입했다. 김영욱의 음반이 너무 귀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공통점이 표지의 색상이 검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 음반은 국내에서는 상당히 많이 팔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1995년 서울방송(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옥이 이모’ 의 주제 선율로 대중들에게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저 시기에 내가 본 드라마는 ‘여명의 눈동자’ 와 ‘모래시계’ 딱 두 편뿐이다.

본방사수는 불가능했고, VCR 녹화본을 돌려본 기억뿐이다. 그래서, ‘옥이 이모’가 어떤 드라마였는지 전혀 모르겠다. 

저음을 대표하며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첼로라는 악기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가자. 첼로는 기본적으로 활로 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擦絃樂器(찰현악기)이다. 영어로 cello 혹은 violoncello 라는 이 악기는 바이얼린族(족:violin family) 악기이다. 바이얼린族(족) 악기로는 바이얼린,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를 말한다. 현재 오케스트라에서 사용되는 현악기는 모두 바이얼린族(족)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어로 ‘작으면서 큰 비올(small supple viol)’ 이라는 뜻이니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첼로의 전신이 되는 악기로 ‘비올(viol)’ 이 있다. 우선 첼로는 4현인데, 비올은 6현이었다. 그리고, 비올에는 ‘指板(지판)’ 에 기타처럼 칸막이인 프렛(fret) 이 있었다. 첨부한 사진을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첼로(왼쪽)와 비올

17세기 까지의 첼로 연주 모습

연주방법도 바닥에 놓거나 어떤 물체 위에 놓고 연주했다.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악기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1644-1737)‘ 에 의해 현대적인 모습으로 제작된다.

그가 제작한 첼로는 ’포르마(forma) B’ 혹은 ‘포르마(forma) B 피꼴라(piccola)’ 로 불렀다. 포르마는 型(형), 피꼴라는 ‘작다’ 는 뜻이다. 그러니까, 크기를 확 줄여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크기가 된 것이다. 19세기에도 큰 변화는 없이 ‘forma B’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1860년경 ‘첼로의 파가니니’로 불리는 ‘아드리안 프랑수아 세르베(Adrien François Servais:1807-1866)’ 가 커다란 첼로를 다리만으로 지탱하기 힘들어 엔드핀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몸통을 세우는 발에 해당하는 ‘엔드핀(end pin)’ 이 개발된 셈이다.

엔드핀의 적용은 여성들에게도 연주의 기회가 주어진다. 과거에는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gut)絃(현)을 사용했고, 지금은 소리를 키우기 위해 金屬絃(금속현)이나 거트에 금속을 감은 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 모습

트랙 1. 자클린의 눈물(Les laemes du Jackline op.76 no.2)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주로 활약한 ‘희가극(opera buffa)’과 오페레타 작곡가 ‘자끄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1819~80)‘ 의 작품이다. 오펜바흐는 독일 쾰른 출신의 유태인으로 본명은 ’야콥 레비 에버스트(Eberst)’ 인데, 아버지의 고향인 ‘오펜바흐’를 예명으로 사용해 굳어진 경우이다.

1835년부터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첼리스트로 오래 활동했다. 1855년 계약이 해지되자 샹젤리제의 작은 극장을 임대해 자신의 음악을 연주했다. 나폴레옹 3세는 오펜바흐에게 파리 시민권과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창시자인 오펜바흐의 영향을 받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오페레타를 작곡했다. 파리 몽마르뜨의 댄스홀 물랑루즈의 상징 ‘캉캉춤’의 BGM 으로 유명한 ‘천국과 지옥(지옥의 오르페우스)’ 서곡, ‘호프만의 이야기’ 같은 작품을 통해 사회풍자를 많이 했다. 젊은 날 오펜바흐는 첼로 작품에 관심이 많아 많은 작품을 썼다. 

오펜바흐의 1846년 작품으로 3곡으로 된 ‘숲 속의 선율(Les Harmonies des Bois) op.76 의 제2번으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다.

오펜바흐의 미발표된 작품을 독일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미푸네‘ 가 우연히 악보를 발견해 약간의 손질을 거쳐 발표했다고 알려졌다. 독일 사람이지만, 프랑스에서만 활동하다 세상을 떠난 오펜바흐의 작품을 거의 100년 지나 뒤늦게 찾아냈다는 부분이 설득력이 크지는 않다. 제목인 ’자클린의 눈물‘ 은 악보를 찾아내 연구한 ’베르너 토마스-미푸네‘가 붙였다. 비슷한 年輩(년배)인 비운의 영국의 여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é:1945~87)‘ 에게 오마주(homage:敬意) 하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전한다. 자! 젊은 첼리스트가 우연히 옛 악보를 정리하다가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을 찾아냈다.

그 곡 연주를 해보니 너무 슬퍼 비운의 여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떠올렸다. 그래서, 이 곡을 ’뒤 프레‘ 에게 오마주하면서 제목을 ’자클린의 눈물‘ 이라 붙였다. 감수성이 빼어난 예술가들에게는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 부분은 개연성이 높아서 설득력이 있다. 자,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지 않은가? 파블로 카잘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우연히 발견해 발표한 것이 연상되는 스토리 텔링이라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뒤 프레‘의 죽음을 애도해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음반으로 녹음할 정도면 연주자로선 상당한 내공을 갖춘 이후라야 가능해진다. 이 음반은 1983~85년에 녹음되어 1986년 발표되었고, ’뒤 프레‘는 1987년에 사망했다.

그래서, 비운의 첼리스트 ’뒤 프레‘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건 시차가 맞지 않아서 완벽한 거짓말이 된다. 

클래식 사상 가장 안타까운 삶을 살다 간 여성은 ‘클라라 하스킬’ 과 ‘자클린 뒤 프레’ 이다. 이 두 여성들의 삶은 어디에 비길 데가 없는 애처로움 그 자체이다. 첼로의 묵직한 저음이 울려 퍼지면 가슴이 마냥 무너져 내린다. 제목의 작용인지 자클린이 겹쳐진다. 절제된 슬픔위로 ‘뒤 프레’ 의 凄然(처연)한 삶이 오버랩되며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 끝없는 深淵(심연)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하염없이 묵직한 슬픔이다. 너무 가슴 깊이 절절한 슬픔이라 그런지 제목인 ‘자클린의 눈물’에 감탄하게 된다.

이 곡을 주제선율로 쓴 드라마라면 그 내용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桎梏(질곡) 많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억척같은 삶을 다루었으리라. 

트랙 2. 론디노(Rondino:짧은 론도) 

이 곡은 근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쟝 르네 프랑세(Jean rené Françaix:1912~97)’의 작품이다. 프랑세는 ‘르망’ 출신으로 르망음악원장인 아버지와 르망시 여성합창단 지휘자인 어머니를 둔 음악영재였다. 르망음악원을 거쳐 1930년에 파리음악원을 졸업했다. 현대 작곡가이지만  신고전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프랑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이었다. 올리비에 메시앙과 더불어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1991년 프랑스 최고의 훈장 ‘레종 도뇌르’를 받았다. 그의 작풍은 가볍고 재치가 넘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생기발랄하고도 우아한 매력도 프랑세 음악의 특징이다. 발레, 오페라와 관현악곡 100여 편과 약 10여 편의 영화음악도 만들었다. 

이 곡은 1937년 작품으로 작은 규모의 코메디 오페라 ‘절름발이 악마(Le Diable boiteux)’ 에 삽입된 ‘론디노 스타카토(rondino staccato:스타카토로 이루어진 짧은 론도)’ 로 프랑스 첼리스트 ‘모리스 장드롱(Maurice Gendron)’ 이 1953년에 편곡한 버전이다. 

첼로가 표현하는 스타카토 주법에 주의해 감상해보자.

경쾌하고 발랄한 선율이다. 가끔씩 활로 현 전체를 내려찍듯 표현하는 재치 넘치는 엑센트 부분도 있다. 론도형식답게 재기발랄한 선율이 나열되면서 반복된다. 

트랙 3. 세레나데(Sérénade)

‘쟝 르네 프랑세’의 1934년 작품 '작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레나데(Sérénade pour petit orchestre)' 라는 관현악곡에 나오는 ‘Andantino’ 를 프랑스 첼리스트 ‘모리스 장드롱(Maurice Gendron)’ 이 1953년에 편곡한 버전이다. 

세레나데는 ‘저녁선율’ 혹은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로맨틱한 노래를 말한다.

첼로로 표현되는 세레나데라 밝고 경쾌하지는 않고 살짝 우울한 빛깔로 채색되었다. 숫기 없는 젊은이가 수줍게 불러보는 듯, 나른하지만 담백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트랙 4. 저녁의 선율(Harmonies armour soir op.68) 

1852년에 오펜바흐가 작곡한 첼로소품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담담히 흐르는 짧은 작품이다. 저녁나절 어스름이 내려앉으며 아쉬운 듯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에 애틋한 그리움을 실어본다. 가슴이 메이는 절절한 그리움을 첼로는 온화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연주한다. 

트랙 5. 無窮動(무궁동:Mouvement perpétual)

‘無窮動(무궁동)’ 이란 것은 라틴어 ‘퍼페티움 모빌레(Perpetuum mobile)’에서 유래한 음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길이와 빠르기의 음악이 쉬지 않고 연주되는 형식이다.

그래서 永久運動(영구운동)을 연상시킨다. 하이든, 멘델스존, 파가니니, 베버,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의 작품이 유명하다. 

원래는 1944년 발레 ‘하얀 아를캥(L'Arlequin blanc)’ 에 나오는 작품을 ‘프랑세’가 拔萃(발췌)해 단독으로 발표한 것으로 프랑스 첼리스트 ‘모리스 장드롱(Maurice Gendron)’ 이 1953년에 편곡한 버전이다. ‘아를캥’ 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인형극에 쓰이는 꼭두각시 인형을 말한다. 쉽게 말해 하얀 옷을 입은 삐에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를캥

첼로가 표현하는 ‘無窮動(무궁동)’ 은 소란스럽지 않고 여유가 넘치는 가운데 경쾌함과 즐거움이 이어진다. 

트랙 6.

자장가(Berceuse) 

‘쟝 르네 프랑세’ 1940년작 뮤지컬 코메디 오페라 ‘라포스토프(L'Apostrophe)’ 에 삽입된 자장가로 프랑스 첼리스트 ‘모리스 장드롱(Maurice Gendron)’ 이 1953년에 편곡한 버전이다.

인자한 할머니가 떼쓰며 잠투정하는 아이를 달래며 들려주는 너그럽고 편안한 자장가 선율이 흐른다. 어쩌면 연인에게 속삭이는 로맨틱한 고백일지도 모를 것 같은 그런 여유로운 호흡에 생각이 복잡해진다. 

트랙 7. 타란텔라(Tarantella op.33) 

‘다비트 포퍼(David Popper:1843~1913)’ 는 체코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이다.

프라하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1863년 첫 연주여행에서 ‘프란츠 리스트’ 의 사위였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 의 인정을 받는다. 1867년 비엔나에서 데뷔한 뒤 ‘빈국립오페라’ 단원으로 활동했다. 1872년 ‘프란츠 리스트’ 의 직계 제자인 ‘소피 멘터’ 와 결혼한다. 결혼 다음 해 그는 ‘빈국립오페라’를 나와 아내 ‘소피’와 연주 여행을 다니며 대성공을 거둔다. 그들은 1886년에 이혼하고, 그녀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가 된다. 1886년 포퍼는 ‘프란츠 리스트’ 의 추천으로 ‘부다페스트 음악원’ 교수가 된다. 이 때 ‘예뇌 후바이‘ 와 ’부다페스트 4중주단‘을 만들어 평생을 보낸다. 브람스의 격찬을 받은 이 위대한 4중주단의 聲價(성가)는 엄청나게 유명하다.

포퍼는 당대의 최고 피아니스트였던 브람스와의 협연도 자주했던 최고의 첼리스트였다. 4 곡의 첼로 협주곡과 ’세 대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레퀴엠‘이 유명하고 ’첼로 연습곡 op.73’ 은 첼로 학습자의 고급단계 필수 교본이다. 그의 부다페스트 음악원 제자 중 ’아돌프 쉬퍼‘ 는 후에 헝가리를 대표하는 첼리스트 ’야노스 스타커‘를 키운 스승이 되었다. 포퍼는 공식적으로 엔드핀(end pin)을 쓰지 않은 마지막 세대였지만, 1880년 그려진 油畫(유화)에서는 포퍼가 엔드핀을 사용하는 현악 4중주단의 모습으로 그려져 만년에는 사용했을 거라 짐작된다. 현재 헝가리에서는 ’다비트 포퍼 국제 콩쿠르‘ 가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젊은 첼리스트의 등용문으로 2017년 송민제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그랑프리를 받았다. 

다비트 포퍼의1860년 모습

이 곡은 포퍼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타란텔라 op.33 이다. ‘타란텔라’는 원래 이탈리아 나폴리지역의 빠른 박자의 민속춤곡이다. 나폴리 부근 ‘타란토’라는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독거미 ‘타란툴라’ 에 물린 사람이 발작한 데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최근의 연구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추던 칼춤(劍舞)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3박자 혹은 6박자의 빠른 춤곡으로 탬버린,만도린, 아코디언을 동반하고 추기도 한다. 단조와 장조가 교대로 나타나는 빠른 템포의 이 춤은 19세기부터 음악에 많이 쓰인다.

이탈리아 남부지역과 아르헨티나에서 인기가 많은 춤곡이다. 춤은 시칠리아왕국의 아풀리아 지역에서 처음 시작되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에도 이 춤이 나온다. 이 리듬을 사용한 음악은 열거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넘쳐난다. 대표적으로는 슈베르트, 멘델스존, 리스트, 쇼팽, 차이콥스키, 생상스, 드뷔시의 작품이 있다. 

첼로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격조의 빠른 춤을 선보인다. 정중하게 격조를 갖추고 여유롭게 춤추는 지긋한 나이의 중년 老紳士(노신사)를 연상시킨다. 우아함과 여유가 넘쳐나지만 중후한 선율이 매력적이며, 교향곡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다급하게 몰아세운 뒤 장중한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트랙 8.

꿀벌(Die Biene op.13 no.9) 

이 곡은 무수한 誤謬(오류)‘를 부르는 음악이다. 흔히 독일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의 작품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곡을 쓴 사람은 독일의 작곡가 겸 바이얼리니스트인 ‘프랑소와 슈베르트(François Schubert:1808~78)’ 이다. 독일 드레스덴 출신으로 그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 이름은 예명이고, ‘안톤 프란츠 슈베르트(Anton Franz Schubert)’ 가 본명이다.

이유는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혼선이 있다. 영어권에서는 ‘주니어(Jr.)’, 독일어권은 ‘2세(II)’ 같은 표기가 있었는데, 이 집안은 그렇게 쓰질 않아서 문제였다. 그러니까 ‘안톤 프란츠 슈베르트 2세(Anton Franz Schubert II)’ 라고 썼으면 혼선이 없었다. 아버지는 교회음악 작곡가인 ‘안톤 프란츠 슈베르트(Anton Franz Schubert: 1768~1824)’ 이다. 프랑소와 슈베르트는 1823~73년 까지 由緖(유서) 깊은 교향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바이얼린 악장을 지냈다. 그는 ‘바이얼린과 피아노를 위한 바가텔(피아노 소품)’에서 ‘無窮動(무궁동)’ 작품인 ‘꿀벌(Die Biene op.13 no.9)’ 하나로 유명해져 지금까지 이름이 전해진다.

바이얼린과 피아노를 위한 바가텔 op.13 은 1856~62년 사이에 작곡된 12개의 소품집이며 제9번 ‘꿀벌’ 은 1860년에 작곡되었다. 

그야말로 꿀벌이 잉잉거리며 나는 모습을 소리로 묘사한 ‘無窮動(무궁동)’ 음악이다. 원곡 바이얼린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데, 첼로버전으로는 베르너 토마스가 편곡했다. 원곡 바이얼린의 잔망스러운 날개짓 대신 꿀벌들의 여유롭고 느긋한 첼로식의 날개짓이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트랙 9. 꿈을 꾼 후에(Après un rêve de Trois mélodies, op.7 no.1) 

근대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ê:1845~1924)’의 1870~77년 사이에 작곡되어 1878년 출판된 곡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포레가 파리 ‘에꼴 니데르메이에르 음악원’ 졸업하던 1865년에 쓴 곡이라는 게 더 자연스럽다. 포레의 성악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세 개의 멜로디(Trois mélodies op. 7) 중 첫 번째 곡이다. 나머지 두 곡은 ’찬송가(Hymne op.7 no.2) 및 ‘뱃노래(Barcarolle op.7 no.3)’ 이다. 포레는 생상스의 제자이자 라벨의 스승이며, 파리음악원 출신이 아니면서 파리음악원장을 지냈다. 오르간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던 근대 프랑스 음악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가사는 프랑스 시인 ‘로맹 부씨느(1830~99)’가 번역한 이탈리아의 시를 사용했다.

영어로도 ‘꿈을 꾼 후에(after a dream)’ 로 번역된 제목이 이미 모든 걸 이야기 한다. 젊은이의 사랑이야기에 대한 회상이라면 아주 적절한 해석이 되겠다. 내용은 사랑하는 여인과 하늘로 날아올라 빛을 향한 비행을 즐기던 흘러간 사랑에 대한 회상과 그 사랑을 다시 잡아보려는 정열을 감미롭고 로맨틱하게 노래한 것이다. 파블로 카잘스가 첼로 버전으로 편곡한 이래 노래와 더불어 첼로 버전도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원곡의 감미로움을 加減(가감)없이 전해주는 첼로의 아련하고 몽환적인 멜로디가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사무치도록 절절하게 표현했다. 

트랙 10.

모세 환상곡(Moses-Fantasie) 

이탈리아 출신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서양 음악사에서 첫 손에 꼽는 바이얼리니스트, 작곡가이면서 기타 연주도 빼어났다. 흔히 ‘악마의 바이얼리니스트’ 로 알려졌는데, 그 기교가 얼마나 빼어났으면 이런 별명이 붙었을까? 간단하게 超絶技巧(초절기교)로 소문났고 오늘날에도 일부 작품은 연주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파가니니는 이른바 ‘말판 증후군’ 환자였던 모양이다. 이 말판 증후군은 지나치게 긴 손가락을 가지게 만든다. 그래서 그 현란한 기교가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 전해지는 파가니니의 초상화를 보면 깡마른 체구에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 두드러지는 매부리코와 광대뼈가 강조된다.

이빨이 빠져 얼굴 모습이 기묘한데다가 구부정한 자세로 현란한 연주를 했다. 파가니니가 남긴 고난이도의 빼어난 기교에 대한 에피소드는 넘치게 많이 전해진다. 바이얼린 하나만으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모방했고, 각종 동물의 소리를 흉내냈으며, 활대신 나뭇가지로 연주했다. 또, 두 줄이나 한 줄만으로도 연주를 했다고 전해진다. 파가니니가 남긴 연주기법은 무엇일까? 파가니니는 믿기진 않지만, 바이얼린으로 무려 4옥타브대의 음역을 연주했다고 한다. 음을 하나씩 끊어서 연주하는 ’스타카토‘, 현을 손으로 튕기는 ’피치카토‘, 휘파람 소리를 흉내내는 ’하모닉스‘, 두세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더블 스톱(중음주법)‘ 등은 지금은 일반화된 바이얼린의 테크닉으로 모두 파가니니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또, ’스코르다투라‘ 로 알려진 변칙적인 조율 기법도 파가니니의 전매특허였다.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집단 실신하거나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너무 대단하고 다양하다. 1828년 파가니니가 비엔나에 처음 나타났을 때, 슈베르트는 그를 ‘바이얼린의 천사’ 로 생각해 책을 팔아 입장권을 사서 연주회에 갔다. 리스트는 그의 초절기교에 감탄한 나머지 ‘피아노의 파가니니’ 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을 반대했던 클라라 슈만의 부친인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는 ‘파가니니가 연주한 아다지오보다 나를 감동시킨 음악은 없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 걸쳐 위대하고 타인의 범접을 불허하는 예술가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음악 평론가였던 슈만마저도 ‘바이얼린에는 상대가 없는 인물’ 로 평가했다. 

우선 이 곡은 요즘의 시각으로 봐도 매우 예의바른(?) 내지는 계산이 정확한 케이스에 해당된다. 제목이 저렇게 쓰니까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좀 길다. 정확하게는 ‘로씨니의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 중 ’당신의 수많은 별‘ 주제에 의한 서주와 변주곡(Introduction und Revolution über ‘Dal tuo stellato’ aus Rossinis “Mosè”)‘ 이 된다.

이걸 줄인 게 ’모세 환상곡(Moses Fantasie)’  이다. 이런 類(류)의 음악으로는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이 있다. 결과적으로 원작자에 대한 오마주(homage:敬意) 성격이 짙은 게 일반적이다. 자, 다시 로씨니의 음악으로 들어가 보자. ‘조아키노 로씨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가 1818년에 작곡한 3막짜리 종교적 비극 ‘이집트의 모세(Mosé in Egitto)’ 는 이듬해에 수정해 다시 완성했다. 개신교의 구약성경 ‘出埃及記(출애급기: 한글 성경은 출애굽기)’가 그 배경이다.

埃及(애급)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Egypt)의 한자 音借(음차)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발행한 개신교 성경에서는 굳이 ‘출애굽기’ 라고 번역하고 있어 썩소가 나온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성경은 ‘탈출기’ 로 깔끔하다. 천주교에 반대한 종교개혁의 결과물인 개신교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하물며 대한불교조계종도 불경과 기도문을 한글화를 상당 부분 마친 상태이다. 말이 옆으로 샜다. 슬며시 날씨가 더워진 ‘인디안 썸머’ 탓이다. 여하튼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紅海(홍해:Red Sea)’에 도착해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기도의 결과로 홍해가 쩍 갈라진다. 이 때 모세가 기도하며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당신의 수많은 별(Dal tuo stellato)’ 이다.

그래서, ‘모세 환상곡’ 이라고 부른다. 이 곡의 테마를 이용해 파가니니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처럼 바이얼린의 ‘G絃(현)’ 만을 사용하는 서주와 변주곡을 작곡했다. 

베르너 토마스의 첼로 편곡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장하게 표현되는 선율이 원곡을 넘어서는 감동을 자아낸다. 중간 중간에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연주되는 첼로의 고음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트랙 11. 저녁별의 노래(Lied an den Abandstern aus 'Tannhäuser')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1813~83)'는 독일과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려고 했기에 자신의 작품은 오페라(opera)가 아닌 ’樂劇(악극: Musikdrama)'이라고 주창했다.

후기의 대작인 ‘파르지팔’,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1845년 겨우 30대 초반인 바그너가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탄호이저’ 는 바그너 스스로 ‘낭만적 오페라’ 라는 부제를 달았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바그너 입문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래도, 이미 여러 곳에서 바그너식의 ‘樂劇作法(악극작법)’ 이 나타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형적인 자신의 처지를 음악적으로 빗대어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친숙한 멜로디가 많은 이 오페라에서 유명한 노래는 제2막의 ‘순례자의 합창’ 과 제3막의 ‘저녁별의 노래’ 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아반트스테른(Abandstern)'은 ’샛별(金星:금성)‘ 이다.

맨 처음 ’탄호이저‘를 듣고 그 시절 全世界(전세계)를 누비던 貿易(무역)맨이던 나는 아둔하게도 이 부분을 몇 날이나 고민해야만 했다. 왜 ’샛별‘이 저녁별인가? 결론은 너무나 웃기는데, 독일과 우리의 시차는 7시간이다. 우리에겐 새벽별이지만, 서유럽에서는 초저녁에 뜨는 저녁별이다. 이런 게 바로 번역이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아니면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제3막에서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예감한 볼프람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첼로는 이 노래를 은하수가 희뿌옇게 내려앉은 낭만과 우수로 뒤엉킨 밤하늘로 우리를 이끈다. 아하! 젊은 날의 바그너는 이런 애틋하고도 아련한 감수성이 있었던가 보다.

트랙 12.

자파데아토(Zapateado op.23-2)

서양음악사에서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는 ‘프란츠 리스트(1811~86)’, 바이얼린 연주자는 ‘니콜로 파가니니(1772~1840)’ 라는 데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한다. 18~9세기를 風靡(풍미)한 파가니니 이후 바이얼린계는 브람스의 절친 ‘요제프 요아힘(1831~1907)’을 필두로 스페인의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 헝가리 출신의 ‘레오폴드 아우어(1845~1930)’ 가 활동한다. 그리고, 벨기에의 ‘외젠느 이자이(1858~1931)’ 가 뒤를 이어 합류해 전설이 된다. 이 중 아우어는 러시아에서 후학지도에 전념해 자신의 제자들이 20세기 바이얼린계를 평정하니, 유명한 ‘아우어 學派(학파)’ 이다.

아우어의 바이얼린 교육은 러시아 혁명으로 미국으로 옮겨와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이 앞선 음반에서 살펴본 이자이는 ‘프랑코-벨기에 樂派(악파)’를 형성해 전세계 바이얼린계를 兩分(양분)했다. 사실상 兩分(양분)이라고 표현하기 미안할 정도로 저울추는 아우어 학파 쪽으로 기운다. 아우어는 순수하게 동문들로 이루어져 學派(학파)를, 이자이는 음악적인 성향으로 분류한 그룹이라 樂派(악파)로 쓰는 게 적합하다. 요아힘과 사라사테는 한 시대를 風靡(풍미)한 거장들이지만 뚜렷한 계보를 형성하지 못했다.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1844~1908)' 는 스페인 나바레州(주)팜플로나에서 포병대 군악대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며 헤매던 바이얼린 연주를 바로해내는 천재성을 보였다. 5세부터 바이얼린 공부를 시작해, 8세부터 공개 연주회를 하면서 이사벨라 2세 여왕의 눈에 띄어 공식 후원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여왕의 후원을 받아 12세에 파리음악원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1860년 파리에서 공식 데뷔하고, 곧 이어 런던에서도 데뷔한다. 손가락이 길어 힘찬 운지와 운궁을 하는 그의 연주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당대 최고 바이얼리니스트이자 라이벌 ‘요제프 요아힘’ 과 절친이던 ‘요하네스 브람스’마저 팬이었다고 한다. 브루흐, 랄로, 비제, 생상스 등이 그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그리고, 사라사테는 자신의 바이얼린 테크닉을 과시라도 하는 듯 소품 작곡에도 힘썼다. 그리고, 유명한 음악을 바이얼린으로 편곡해 널리 알린 공로도 크다. 1908년 사라사테는 파리에서 기관지염으로 사망했다. 그가 쓰던 名器(명기) 1724년産(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바이얼린은 파리 ‘시떼 데 라 무지크(Cité de la Musique)’ 연주홀에 기증되었다. 이후 사람들을 그를 추모해 이 바이얼린을 ‘사라사테 스트라디바리’ 로 명명했다. 사라사테의 연주는 음반 초창기 시절이라 지금도 일부가 남아서 전해진다.

'사파테아도(zapateado)' 는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쓰는 춤의 동작 내지는 춤곡을 말한다.

‘사파타(zapata:구두)' 에서 유래되었다. 플라멩고 춤을 추면서 탭댄스처럼 구두발끝과 뒤축으로 바닥을 세게 차는 동작을 말하는데, 이것이 그대로 춤곡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정열적인 플라멩고춤에서 핵심인 부분이다. 3박자로 거칠게 추는 춤과 춤곡이다. 사라사테는 1880년에 이 곡을 ’스페인 춤곡 제3권‘ 으로 작곡해 발표했다. 

바이얼린곡이지만 베르너 토마스-미푸네가 첼로버전으로 편곡했다.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우리의 국악을 연상시키는 흥겨움이 있다. 지나치지 않고 중후하고도 점잖게 표현되는 궁중음악을 떠올리게 되는 춤곡이 되었다. 

트랙 13. 하늘 아래 두 영혼(Deux ames au ciel - Elegie op.25) 

1843년에 작곡된 ‘4 Impressions op.25' 의 첫 번째 곡이다.

젊은 시절에 느낀 고뇌, 슬픔, 방황 같은 감정을 풀어낸 인상주의풍의 작은 소품이다. 부제로 붙은 ’悲歌(비가)‘ 가 이미 모든 걸 말해준다. 

젊은 날의 여러 감정선이 복잡하게 맞물려 듣는 이의 가슴 저 편에 숨겨져있는 아련한 슬픔이 느껴지는 한없이 아름다운 선율이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치카토 주법이 인상적으로 오래 여운을 남긴다. 

이 음반은 1983년 5월 3-5일 및 1985년 1월 23일에 녹음되어 독일의 마이너 음반 레이블인 ‘ORFEO’에서 1986년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빅히트를 했던 모양이다.

지금과 달리 90년대 초반이면 드라마에 삽입된 음악의 파급력이 엄청났었다.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미푸네’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 글을 쓰면서 아주 여러 번에 걸쳐 다시 들어본다. 베르너 토마스의 첼로 음색은 우리네 정서와 너무 잘 어울린다. 절묘하게 감정선을 건드린다. 내가 이 음반을 선택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이 음반에는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없었던 보석같은 소중한 음악들이 주로 수록된 때문이다. 첼로가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감동은 ‘베르너 토마스-미푸네’의 너무나 빼어난 편곡 때문이리다. 가을을 맞아 진한 커피향과 함께 듣기에 적합한 아련한 슬픔의 정서가 밑바닥에 잔잔히 깔려있다. 첼로의 묵직한 저음이 주는 슬픔과 그리움은 낙엽 쌓인 늦가을 어느 날 고즈넉한 ‘昌德宮(창덕궁)’ 후원에 ‘演慶堂(연경당)’ 사랑채를 떠올리게 한다.

이건 연주자 ‘베르너 토마스-미푸네’ 특유의 온화하고도 ‘절제된 운궁’ 덕일 게다. 그는 ‘中庸(중용)’의 미덕을 잘 알고 있는 연주자이다. 깊이 있고 철학적인 사색이 느껴진다. 나는 러시아의 대가 ‘다닐 샤프란’ 을 떠올렸을 정도이다.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게 아니라 장독대 뒤에서 나직하게 흐느끼던 우리 어머니들의 恨(한)과 맞닿아 있다. 이런 연주라면 세월이 지나도 명반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이 음반의 히트에 고무된 ‘베르너 토마스-미푸네’는 1996년에 녹음해 1997년 ORFEO에서 발매한 첼로 소품집 ‘사랑의 인사(Salut D'Amour)'에서 한국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표현한다.

마지막 트랙에 박춘석 작사/곡 패티김의 노래로 친숙한 가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1983)’ 을 수록한다. ‘베르너 토마스-미푸네’가 특별히 한국의 음악을 싣겠다고 악보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 곡을 선택해 건네준 레코드 회사 관계자의 안목이 격조가 높다. 이 노래는 대중가요지만 이제는 클래식 반열에 올랐다. 잘 알려진 곡 위주의 첼로 소품이라면 1997년 앨범 ‘사랑의 인사(Salut D'Amour)'가 더 적합하다. 아니면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 소품집도 후회없는 선택이다. 마이스키는 한복을 입은 앨범 쟈켓도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베르너  토마스-미푸네 

이 음반 연주를 맡은 악단은 ‘뮌헨 챔버 오케스트라(The Munich Chamber Orchestra:Münchener Kammerorchester 약칭 MKO)’ 이다.

1950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州(주) 州都(주도) 뮌헨에서 창단된 실내악단이다. 악단의 설립자는 ‘크리스토프 슈테프(Christoph Stepp)’ 이며, 이후 1956~95년 까지 40년간 지휘자 ‘한스 슈타틀마이어(Hans Stadlmair)’ 가 예술감독을 맡아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는 자체 연주 및 ‘바이에른 방송국’ 과 협력을 통해 대략 6,000회의 연주회를 지휘했다. 이 음반에서 이 악단의 섬세하지만 풍성한 울림은 첼로의 중후한 저음선율과 절묘하게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 명반은 이런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지휘자 ‘한스 슈타틀마이어(Hans Stadlmair:1929~2019)’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비엔나 음악공연예술대학’ 를 졸업했고, 동기로는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가 있다.

이 대학 출신들은 매우 화려하다. 대표적으로 카라얀과 아바도가 있다. 슈타틀마이어는 1976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의 초빙 지휘자였다. 

‘베르너 토마스-미푸네(Werner Thomas-Mifune)’ 는 1941년 출생한 독일의 첼리스트이다. 바흐가 만년을 보낸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교회의 합창대장인 아버지와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악가 집안이라 자연스레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다. 브람스와 인연이 깊은 데트몰트 음대를 졸업하고 파리로 유학해 첼리스트 앙드레 나바라의 제자가 되었다.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이 사나이는 1972년 6인조 첼로 앙상블 ‘필하모니쉬에 첼리스텐 쾰른(Philharmonische Cellisten Köln:쾰른 첼로 실내악단)’을 창단한다.

이 악단의 합주력은 놀라웠고, 이들의 성공은 비슷한 편성의 첼로 앙상블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가장 유명한 앙상블은 ‘베를린필 12 첼리스트들’ 일 것이다. 베르너 토마스-미푸네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자주 협연한 첼로 연주자였다. 최근에는 자신이 설립한 ‘쾰른 첼로 실내악단’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편곡 솜씨가 빼어나다.

[출처] 저녁의 선율(로맨틱 첼로 소품집)-베르너 토마스-미푸네(ORFEO)|작성자 행운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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